2013년 2월 11일 월요일

대가를 치루어야 비로소 당당해질 수 있고 약속도 이루어진다




너무나 오랜만에 쓰는 블로그

그래도 말씀 묵상으로 재시작 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장기간 여행하는 것도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끼니와 잘 곳, 빨래로 시작해, 자금관리, 시간관리, 인간관계, 관광 등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피로도 쉽게 누적되고, 장기간 여행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되돌아보면 막상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하루하루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곤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아 많지만, 이제부터라도 블로그를 써 보고자 한다.

일이 더 늘어버린 셈이다. 조금 더 부지런해지는 수 외에는 방법이 없다.

네이버 블로그를 쓸까 하다가, 외국인 친구들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구글 블로그를 사용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컴퓨터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네이버나 다음처럼 그냥 던져주는

대로 사용하면 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구글 블로그는 html이나 자바스크립트를

조금 알아야 되나 보다. 어제는 고작 블로그 우측에 있는 카테고리 만드는데 하루를 꼬박

다 탕진하고 말았다. 덕분에 지금은 스페인 코르도바에 와 있는데,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보지도 못하고 말았지만, 누구나 똑같은 블로그가 아니라,

공부한 만큼 꾸며가다보면 나만의 블로그가 완성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다.

둔해져 버린 내 두뇌가 문제이지만.

html이라는 것을 처음 다루면서, 초등학교 때 달러, 별과 같은 것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내는 베이직 생각도 났다.

암튼 바쁜 일상에 쫓긴 나머지, 가장 중요한 말씀 묵상하는 시간에 소홀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오늘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죽은 아내 사라의 장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헤브론은 내가 팔레스타인에 있을 때 실제로 들렀던 곳이라 말씀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무료로 매장지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그 대가를 분명히 치루었다.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지 않았다면 후에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값을 치룰 능력이 되는데, 치루지 않으면 아무리 공짜로 얻은 것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떳떳하지 못하다.

코르도바에 오기 전 세비야에 있을 때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굵직한 여러 굴뚝들이 있는 것과 세라믹이라는 글씨를 통해 미루어 볼 때,

그 옛날 도자기를 굽던 곳이 아닐까 짐작했다. 꽤 규모가 큰 건물이었고 아주 한적했다.

한 건물 중 무슨 거적때기 비슷한 것으로 대충 가려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있는 걸까 궁금했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들어가길래 궁금하던 차에 나도 뒤따라 들어가

보았더니 미술관이었다. 규모가 상당했다. Ai Weiwei를 비롯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거적때기가 있던 곳은 도저히 미술관 입구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키고 서 있는 사람도 없었고. 안타깝게도 대단히 흥미로운 곳이 아니면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지 않는다. 첫째, 이 세상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너무 많고, 난 그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갈 충분한 돈이 없다. 둘째, 내가 여행하며 보는 모든 곳이 미술관이고

박물관인데, 굳이 그 안에 들어가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나 레이나 소피아와 같이 상시 무료관람이 가능하거나,

미술관에 따라서 특정요일에는 무료로 개방한다던지 하는 경우에는 때를 맞춰서

들어가는 경우는 있다.

그 거적때기가 있던 곳은 실제 입구가 아니라, 관계자만 드나 드는

비밀통로 같은 것이었던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표를 사지 않고 안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관람하는 내내 마음이 찝찝했다. 표를 사야 하는 줄 알았다면 애당초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주머니에 가진 돈도 없었고, 그렇다고 집까지 가서 돈을 가져와 지불하고자 할 마음도 없었다.

귀찮았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나와는 달랐다. 찝찝한 마음을 남기지 않았고, 대가를 지불해 당당했다.

그로 인해 그 땅은 후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는 약속성취의

표상이 되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덥썩 문다는 것, 아주 쉬운 일이다.

단순히 미술관 티켓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일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고,

그 유혹이 클수록 뿌리치기 힘들고, 오히려 정당화하기 바쁘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어쩔 수 없지 않았느냐고.

나는 더 큰 축복, 약속을 기대해야 겠다.

눈 앞에 공짜 관람. 별로 기쁘지 않다.

대가를 치루는 삶, 나의 십자가를 지는 삶,

그 분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다.






















헤브론에서 찍은 사진들을 몇 장 함께 올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긴장이 팽팽한 곳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 사람씩

회전문을 통해 검문을 받으며 통과해야 한다. 내가 방문한 때는 이스라엘의 축제기간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이며 일부 어른들도 옷을 재미있게 차려입고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한편 아랍의 일부 아이들은 외국인에게 돌을 던지며 장난을 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인티파타와 연관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그 돌이 때로는 크기가 꽤 크고, 강하게 던지기 때문에, 위력이 상당하고 때로는 위협적이다.

아이들은 돌을 던지면서도 웃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저 장난일 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도 아닌 나에게조차 언제 어디서 갑자기 돌이 날아올지 몰라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사리분별이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아이들을 겁주려 했다가, 아이들을 흥분케 해서는,

되려 떼로 몰려와 돌팔매질을 당할 수도 있다.

프랑스인 친구와 요르단에 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다행히 그 친구가 아랍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잘 타일렀더니, 아이들이 갑자기 천사처럼 변해,

나중에는 들판에서 함께 어깨 동무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지낸 기억이 있다.

돌을 던진 아이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모를 뿐이다. 돌을 던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그것은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를 죽인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몰랐다. 우리에게 예수를 죽일 수 있는 권리가 없었음을.

또 그 죽음이 우리를 용서하게 되는 사건이었음을.

그 아이들을 통해 미루어볼 때, 사람은 상황과 경우에 따라 악마가 될 수도, 천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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