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요르단 여행 후,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다음 목적지를 정해야 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시리아 VS 이집트
문제는 두 나라 모두 안전하지 않았다는 것.
TV에서는 연일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뉴스가 나왔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두 나라 모두 자전거로 여행하기에는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리아로 가. 내 말 믿어! 시리아 괜찮아.
TV에서만 시끄러울뿐이야. TV가 하는 말 다 믿을 것 없어."
또 다른 사람들은
"죽고 싶어 환장했어? 차라리 이집트로 가.
이집트 상황이 시리아보다는 나아."
지리적으로는 시리아에서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시리아가 여행하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정부는
시리아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했고,
시리아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했고,
여행금지국가를 무시하고 여행한 사실이,
귀국 후에 밝혀지면, 감옥에 가거나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한단다.
그 당시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성지순례를 갔던 한국인들이
납치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시리아도 안 되고, 이집트도 안 되면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지중해 연안국가 어디로든 가는 배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가장 좋았지만,
터키도 나쁘지는 않았다. 리비아는 안 되었고.
배를 얻어탄다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일단 자동차처럼 많이 지나다니지도 않고, 규정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절대 여자들을 무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나,
이런 경우에는 같은 상황이라도 여자가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다.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것 또한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내 편견이겠지만,
여자도 아닌 나를 태워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항해에 대한 지식이 있다거나, 배를 고칠 줄 안다거나,
그도 아니면, 요리를 잘 하면 배를 얻어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선박 수리를 알고 항해를 알겠는가?
그렇다면 요리라도 잘 할 수 있었어야 됐는데,
요리마저도 잘 못했고,
유일하게 잘 한다는 게,
먹기는 잘 먹는다는 거 하나?
일반적으로 배를 얻어타는 경우에는,
적어도 자신의 밥값 정도는 낼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거지잖아.
그 돈 있으면 날아갔겠지.
난 뭐 어여쁜 여자도 아니었고,
항해의 항자도 몰랐으며,
밥값마저도 낼 수 없었던,
한 마디로 냉정히 말해서, 그냥 쓸모 없는 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겐 50kg도 넘는 짐이 실린 자전거까지 있었다는 슬픈 전설이.
태워갈 사람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랄까?
내가 선장이라도 안 태워가겠는걸?
도대체가 말이 안 되니 원.
스스로도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지더라는.
그래도 실제로 물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법!
가능성을 미리 점쳐 시도조차 안 해볼 수는 없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에,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빈틈이 있을 수 있는 거다.
한국에서 요르단까지 돈 없이 자전거 타고도 왔는데 뭔 일인들 못하겠냐는 말이다.
도와줄 사람을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한다면,
까짓것 시리아 가는 거지 뭐.
가기는 싫지만.
findacrew.net이라는 웹사이트에서,
이스라엘에 계시는 한 선장님을 발견.
그 분이 터키로 가신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메일을 드렸다.
답장에 대한 기대는 별로 많이 안 했다.
메일을 한 1000통 보냈으면 모르겠는데,
한 통 보내서 뭘 어쩌겠는가.
답장 안 주셔도 어쩔 수 없고.
끝내 답장 안 주시면, 그냥 다음 날 시리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답장이 온 거라!
답장을 읽는데 숨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성함은 데이빗이라는 분이셨고,
77세의 미국인 선장님이셨다.
77세의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건강하시지만.
메일은 보내주셨지만, 아직 나를 데려갈지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다는 애매한 대답을 하셨다.
사실 데이빗 선장님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데려가기를 원하셨다.
나는 선장님께 우선순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항해 경험이 풍부하고, 비용도 지불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하셨다.
듣자 하니, 처음에는 유능한 사람들이 다수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이 생겼다며 지원했던 것을 결국에는 다들 취소했다고.
할렐루야!
선장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제 오직 나 하나.
선장님으로서도 항해를 혼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데이빗 선장님은 나를 터키까지 무료로 데려가시로 결정을 내리셨다.
살았다!
데이빗 선장님이 나중에 말씀하시기로,
내가 보낸 메일을 되게 좋게 보셨다고 하셨다.
내가 메일에다 "저는 솔직히 항해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라고 썼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안다고 말들은 많이 늘어놓지만,
정작 만나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그런 사람들은 실전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단다.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을 고치는 것보다는,
나처럼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상태가 더 낫다고 하시더라는.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자, 이제 저와 함께 항해하실 준비 되셨나요?
요리를 하는 주방
주방은 영어로 키친(kitchen)이지만,
항해 영어로는 조금 다른 게 많단다.
항해 영어로는 갤리(Galley)라고 부른다고.
그 외에도 기본적인 항해 영어에 대해 데이빗 선장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제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일본이라는 글자 때문에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 해명드리겠습니다.
일단 저는 크리스천이고, 티셔츠에 쓰여진 イエス♡日本은,
예수님께서 일본을 사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저 친일파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전, 일본이든, 중국이든 모든 나라가 증오의 고리를 끊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내가 탈 배의 이름은 시 심포니(Sea Symphony)
배의 왼쪽은 영어로 포트(PORT)라 부르고,
오른쪽은 스타보드(STARBOARD)라고 부르는데,
잊어버리지 말라시며 내 왼 손가락에 PORT라고 써 주셨다.
매듭 짓는 법도 배웠다.
매듭 잘 짓는다고 칭찬도 받았다는.
지금은 다시 까먹었다. -,.-
일정표
아침 일찍 일어나 항해 준비하기!
물과 기름은 항해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 아니 둘
항해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딩이(Dinghy)
구명보트. 딩이라는 발음이 왠지 정겹게 느껴지더라는.
윈치(Winch)라고 부르는데,
이 녀석이 나를 바쁘게 만들곤 했다는.
이 녀석이 나를 바쁘게 만들곤 했다는.
내가 요리를 잘 못한다.
그래도 우리 데이빗 선장님을 위해 한 번 노력해보았다.
한국의 대표적 음식, 비빔밥.
데이빗 선장님은 매운 음식을 잘 드신다고 하셨다.
내가 만든 비빔밥 좋아하시는 건지?
다 드시긴 했는데, 식사 후에 바로 물 마시러 가시더라는.
아니, 매운 거 잘 드신다더니. -,.-
내 방 창문으로 보이던 불빛
항해하는 동안 자전거는 내 방 옆 발전기 근처에 두었다.
항해시에는 무엇을 먹든 꿀맛이었다.
데이빗 선장님 말씀으로는, 배 안에서 아무 일도 안 하더라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근육이 늘 움직이기 때문에,
그 운동량으로 인해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터키로 가는 길에 사이프러스에 들러 물과 기름을 충전했다.
그 날의 항해가 끝날 때면, 와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데이빗 선장님
어떨 때는 밤새워 항해하기도 했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긴 했지만,
밤에 하는 항해는 정말 황홀했다.
잔잔한 바다와
달
차분한
하늘에서 반짝이는 수 많은 별들
아무 걱정이랄 게 없는
지극히 평온한 시간
무아지경
시간이 마치 멈추어 버린 듯한
배도 움직이고 카메라를 쥔 내 손도 움직여서
재미있게 일그러진 달 사진을 많이 얻었다.
몇 시간마다 교대로 키를 잡았다.
밤에는 나침반보다 별을 보고 항해하는 클래식한 방법이 더 정확했다.
가끔 되게 추웠지만, 밤바다를 뚫고 빠른 속도로 항해할 때면,
다분히 흥미진진하기도 했다는.
사실 항해 첫날, 뱃멀미로 고생을 많이 했다.
안에 것 다 토해내고, 아무 일도 못 하고 갑판 위에서 시체처럼 거의 죽어 있다시피 했다.
내 방이나 주방이라도 한 번 갔다 오면,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멀미약을 먹고나서부터는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지만.
선장님은 갑판 아래로 절대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다.
음식도 매번 선장님께서 손수 해서 내게 가져다 주시곤 했다.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77세의 할아버지가
매번 식사를 차려서 손자뻘인 내게 배달해주시는 게 마음이 썩 편치가 않았다.
배도 공짜로 타는데, 나는 밥값도 못 하고.
물론 차려주시는 밥이 맛있기는 했지만.
원래 누가 차려주는 밥은 언제나 맛있는 법이다. -,.-
거북이처럼 보이던 섬
항해하다가 장난기 발동
배 안에는 우리 두 사람뿐이었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데이빗 선장님이 내 구린 영어도 많이 교정해주셨다.
내 영어 생각보다 그렇게 구리지는 않다고.
단어 선택과 특히 회화보다는 작문 쪽이 더 나은 것 같다고 격려를 해 주셨지만,
난 여전히 내 영어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는.
데이빗 선장님은 무료로 터키까지 데려다 주시기로 하셨고,
항해도 가르쳐 주셨고,
영어도 교정해 주셨고,
매번 맛있는 음식도 차려 주셨고,
퇴직하시기 전에 변호사로 일하실 적,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도 많이 들려 주셨다.
세상에 이런 은인이 또 계실까?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런지.
선장님께 감사드리는 마음과 데이빗 선장님과 함께 항해하면서도,
왠지 모를 선장님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함께 들었다.
터키가 가까워질 수록, 선장님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을 출발한지 일주일이 지나,
마침내 우리는 터키의 마마리스에 도착했다.
선장님은 터키가 마치 고향처럼 느껴지신다고 하셨다.
마마리스에 친구 분들도 많이 계셔서,
친구들 만나러 가신다고 딩이를 내리셨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많아서, 우리는 항구 근처 바다 위에 닻을 내렸기 때문에.
무사히 첫 항해에 성공한 기념으로
와인이랑 발사미 소스랑 이것저것 차려서 혼자서 자축 파티를 열었다.
터키까지의 항해는 끝났고 나는 다시 나의 자전거 여행을 계속해야 했지만,
데이빗 선장님의 다음 항해 준비를 조금 도와드리고 떠나기로 했다.
데이빗 선장님과 함께했던 꿈만 같던 항해.
이번 자전거 세계일주에서 최고의 추억 중 하나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선장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은 내겐 과분한 행운이었고,
선장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나를 shipmate라 불러주셨던 데이빗 선장님,
너무 그립습니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한 달 동안 남미로 가는 배를 찾았었다.
안타깝게도 눈에 보이는 소득은 얻질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배를 못 찾았다는 것 또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만약 그 때 내가 배를 찾았다면, 내가 얼마나 교만해졌을까?
아, 하는 일마다 다 되는구나!하면서.
우리의 현실은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겸손케 해주셨음에 감사드리고 싶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고,
적어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이 감사하다.
다시 세네갈 다카르로 왔다.
여전히 배를 찾고 있다.
늘 그렇듯 부정적인 대답만 많이 들었다.
그로 인해 조금 지쳤다 사실.
그렇다고 많이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하루에도 여러 번씩 마음이 요동을 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집에 가야 되나?
여기가 끝인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길었던 터널 끝에서 희미한 빛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요르단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시 그렇게 운이 좋을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케도 불안하게도 만든다.
지켜봐야겠지.
내일도 내일의 해는 뜰 테니까!
이런 게 모험인 거지 뭐!
당신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답글삭제응원 감사합니다.
삭제다시 보아도 감동입니다~
답글삭제이스라엘은 어떤 경로로 가신건지요?^^
저는 모스크바인데.. 시리아. 이라크가 여행금지국이라 비행기를 탈수밖에 없나.. 고민입니다 ㅠㅠ..
Sojaeho0928@hanmail.net 나 카톡 kokoso808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터키와 사이프러스에서 열심히 배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여 사이프러스에서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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