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주일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가고 싶어도 머무는 곳 주위에 교회가 없거나,
있어도 가톨릭 성당이고,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못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 머물고 있는 스페인 알헤시라스에 복음주의 교회가 있다 하여 한 번 찾아가 보았다.
아주 가까운 곳에 몰몬교 교회도 있는 듯 했지만, 이단은 패스!
스페인어로 예배를 드리며, 헤드폰을 통해 영어 통역을 들을 수 있었다.
찬양하던 자매의 목소리에 복음을 선포하는 강한 힘이 느껴져, 대단히 좋았다.
말씀은 스페인어가 유창하신 미국인 선교사님이 해 주셨다. 통역은 사모님이.
수가성 여인과 예수님이 만나는 유명한 장면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시절 야곱의 우물가를 실제로 찾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안타깝게도 야곱의 우물 기념교회 밖 도로옆 벽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랍어 낙서들로 가득했지만.
또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교회 관리인처럼 보이는 아랍인이 교회 지하 우물터를 볼 수 있는 시간을
몇 초밖에 허락해 주지 않았고, 무슨 기념품 가게 마냥 판매하는 건 어찌 또 그리 많던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요셉의 무덤으로 가는 길에도, 아랍의 아이들은 여전히 내게 돌을 던져대고,
그 터만 콘크리트로 대충 복원해 놓고 정작 안에는 텅비어 아무 것도 없었는데,
경찰 2명은 절대 사진은 찍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경고를 !
역시 시간은 몇 초밖에 주지 않고, 그대로 내쫓아버리더라는.
조금 더 보려면 그 손에 돈이라도 쥐어 주었어야 했나? 라는 의심도 갔지만.
그리고 사진 찍고 싶어도 찍을 것도 없더만? 도대체 뭘 찍지 말라는 것인지?
유명한 성지마다 무슨 장사꾼들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매번 불쾌하고,
예수님이 그 모습을 보셨다면, 아마도 다 뒤집어엎어 버리시고,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호통을 치셨을 것만 같다.
아무튼 설교 이야기로 돌아가면,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천시하던 사회 분위기상,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남성이었던 예수님이, 홀로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다는 것 역시 비상식적이고 파격적인 일이었다.
수가성 여인에게 우물 물을 마시면 다시 목이 마를 것이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이 말하기 전에, 수가성 여인에 대한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우리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욕구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3대 욕구라 하는 식욕, 수면욕, 성욕.
언뜻 이 세 가지만 잘 충족되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욕구라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한 필요조건일뿐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쉽게 말해 사람은 먹고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일단 욕구가 충족되면, 더 큰 욕구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욕구 그 이상의 것을 주시겠다고.
영원히 깨이지 않는 기쁨을 주시겠다고. 목마르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얼마나 기가 막힌 말씀인가?
가령 새 가방을 하나 사서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시간이 지나 가방이 낡으면, 나는 또 다른 새 가방을 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처음 가방을 사서 날아갈 듯한 기분을
영원히 지속시켜 주시겠다는 거다.
어떠한 물건을 사서 얻는, 맛있는 것을 먹어서 얻는 그 정도 차원의 욕구충족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웬만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세상의 그 비싸고 화려해 보이는 것들.
그 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부질없고 언젠가는 다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죽을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5분 후에 죽을지, 50년 후에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죽을 때 가진 것 다 싸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니니까.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들은 더 잘 알 수 있겠지.
또 사는 동안에도 가진 게 많아서는 불안하다.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계속 자랑질해야 되니까.
또 수가성 여인을 만나셨을 때 모든 율법을 깨어 버리신 예수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남자와 여자 등)
요새 들어 여러 관공서를 통해 서류들을 준비하면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룰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규정상 안 된다.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다. 딴 데 가서 알아봐라.
도대체 룰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예수님처럼 룰보다 마음이 먼저인 것을.
룰이라는 것 지켜 마땅하다. 다만 내가 요새 만나는 사람들은 그 룰이라는 것 뒤에
숨어서 앵무새처럼 룰 이야기만 반복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한다.
그 분을 안다는 것이 곧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는 길이기에.
예수님처럼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힘이 들고 좁은 길이겠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야곱의 우물터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을 만나셨을 것으로 추청되는 곳
교회 옆 벽 낙서들
팔레스타인 해방에 관한 내용인 듯 한데
장소를 가려서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는
야곱의 우물 기념교회
교회 앞 화려한 모자이크
교회 내부
천정의 예수님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각을 뜨는 것인지?
요한
수가성 여인을 만나신 예수님
성경시대에는 세겜이라 불리었고,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
경찰이 사진을 찍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던 요셉의 무덤
나무들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에발산으로 짐작
수북히 쌓인 쌀밥과 참치 한 캔의 소박한 점심
음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
궂었던 날씨 속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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