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27 - 5:42
대제사장의 질문은 무엇을 의도하고 있나요?
→ 예수를 죽인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대제사장의 권위로 사도들을 누르고자 하였음.
최근 언제 하나님을 경험했나요?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까요?
→ 19세의 어린 세네갈 친구가 이틀 밤을 집에서 재워주기로 되어 있었다. 사는 동네가 시내 중심에서 상당히 멀었고, 집안 사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부모님과 이야기가 잘 안 되었는지, 이틀 밤을 재워 주기로 했던 처음 약속을 취소하며, 바로 다음 날 나가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해 왔다. 여행 중에는 여러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다른 묵을 곳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5시부터 나를 깨워서는 거의 쫓아내다시피 하던 그 친구. 내가 머무는 하루 동안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행동을 하는 친구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처음부터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친구 대신에 다른 사람을 알아볼 수도 있었던 것인데. 초대해놓고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마침 그 날은 주일이었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한 집사님이 그런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머물 곳을 마련해 주셨다. 이야기가 잘 되어서, 이달 말까지 있어도 된다고 하셨다. 덕분에 2-3일에 한 번 꼴로 거처를 여기 저기 옮겨다니지 않게 되어 한 시름 덜게 되었다. 그 친구가 쫓아냈을 때는, 기분도 썩 좋지 않았는데, 더 좋은 곳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친구가 쫓아내주지 않았다면, 나는 머물 곳이 있었을 테니, 집사님께서 도와주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문을 닫으실지언정, 동시에 다른 여러 문을 여시는 분이다. 그러한 일들을 살면서 체험해 온 우리는, 당장 눈앞의 작은 고난에 불평하기보다는, 그 분의 은혜를 체험한 증인으로서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증언해야 한다.
가말리엘의 도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대제사장의 권세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 역시 한 인간일뿐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크리스천에게만 역사하시지는 않는다.
사두개인 가말리엘은 지혜가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위기를 넘긴 일이 있나요?
→ 수능 전,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철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철학 공부 아닌 전혀 관심이 없던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철학보다는 상대적으로 실용적인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살면서 자주 들었다. 적어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사도들은 고난을 기쁘게 견딜 수 있었나요?
→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다.
순간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예수님에 대한 신뢰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위해 내가 겪는 고난은 무엇인가요? 그 고난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 세상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사필귀정을 바라고는 있으나, 정작 바른 말 듣기는 다들 싫어한다.
누가 그런 시시한 것 모르냐는 것이다. 어떻게 모든 것 다 지키고 사느냐고 한다.
바른 말 하는 사람이 환영받기란 쉽지 않고, 오해까지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세상에서 바른 말, 바른 행동해야 한다.
내 힘은 미약해 보일지라도, 나는 선포하고 내 할 일을 다했을 때, 그 다음 더 큰 일은 예수님께서 해 주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한정되어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던,
인정을 받던 못 받던, 예수님을 체험한 나는 묵묵히 나의 할 일을 할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에 비하면, 내가 받은, 그리고 내가 받을 고통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나는 나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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