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현정 서울 시향 대표의 직원들에 대한 막말이 논란이 되고, 대표는 정명훈 예술 감독을 연루시키고 해서, 서양 고전음악에 큰 관심은 없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 페북에서 어떤 분이, 가뜩이나 제 값 주지 않는 풍토가 문제인 마당에, 정명훈씨를 이런 식으로 내쫓아선 안 된다는 식의 글을 남기셨다. 그 분이 예로 드시길, 청색 LED를 발명한 일본인 과학자를 적절히 대우해주지 않아,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일을 연상케 하며, 정명훈 감독이 추문에 휘말리지 않는 나라에서 곱게 활동하시기를 바라신다고.
시민일보 기사 "정명훈 예술감독 가관이네" (링크)
그러다 우선 위의 시민일보 기사를 보았고, 기사와 그 분의 언급에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1. 이미 예정되어 있던 공연들을 갑작스럽게 변경하는 것은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처우의 문제와는 따로 떼어 내 판단해야 되는 것 아닌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신뢰를 깨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2. 청색 LED를 발명한 일본인 과학자는 그 대가로 회사로부터 2만엔(약 20만원)을 제시받고 실망하여 거절 후 도미한 것이고, 정명훈 감독은 지난 10년간 세금으로 140억원을 수령했다고 하는데, 둘 다 제 값을 주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손 치더라도, 전자는 누가 보더라도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후자는 사람에 따라 금액이 크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것이 일반 기업에서 지출된 것도 아니고 세금으로 지출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 과학자와 정명훈 감독의 비교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 이미 예정되어 있던 공연들을 갑작스럽게 변경하는 것은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처우의 문제와는 따로 떼어 내 판단해야 되는 것 아닌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신뢰를 깨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2. 청색 LED를 발명한 일본인 과학자는 그 대가로 회사로부터 2만엔(약 20만원)을 제시받고 실망하여 거절 후 도미한 것이고, 정명훈 감독은 지난 10년간 세금으로 140억원을 수령했다고 하는데, 둘 다 제 값을 주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손 치더라도, 전자는 누가 보더라도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후자는 사람에 따라 금액이 크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것이 일반 기업에서 지출된 것도 아니고 세금으로 지출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 과학자와 정명훈 감독의 비교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내용을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시향 전 직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다는 아래 글을 읽은 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정리해 보기로 했다.
서울 시향 전 직원이 블로그에 남긴 글 "궤변도 되지 못하는 김상수의 정명훈 비판" (링크)
블로그의 글을 읽어보니, 주요 쟁점은 정명훈이라는 사람이 그리 대단한가, 서양 고전음악의 예술적 가치가 그렇게 높은가, 그렇게 많은 세금이 유독 정명훈씨와 서울 시향에 지원되는 것이 타당한가 등이었다.
난 고전음악 애호가는 아니지만, 예술계에 장학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장학금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도 생각한다. 장학금을 받는 이유로 공부를 잘 해서, 가난하므로, 뭐 이유는 다양할 수 있을 테니, 서울 시향이 장학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대내활동과 대외활동이 겹쳐 갈등이 생기는 문제는, 공연 등이 갑자기 정해질 것 같지는 않고, 대략 1년의 계획 등은 미리 세워져 있지 않은 건지, 사전에 상충하지 않도록 조율할 수 없었는지, 그 바닥의 생리를 모르는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명훈 감독이 서울시 의회에 참석하여 죄인 취급을 왜 받아야 하는가 문제는, 죄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시민의 몫이 아닐까 싶고. 게 중에는 왜 서울시 의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인지, 지은 죄가 있어 그런가? 라고 생각하는 시민도 있지 않을런지. 물론 본인이 원치 않으면 참석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고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참석이 의무사항인지까지는 게을러서 찾아보기까지는 않았지만.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된 만큼 참석은 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할 수 있다.
히딩크가 되었든 정명훈이 되었든, 유명인이 (속된 말로) 까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깔 사람들은 이래도 까고, 저래도 깔 테니. 성과가 없(는 것 같)으면 아마도 더 까일 것이다. 다행히(?) 히딩크는 성과가 있었고, 성과가 높을 수록 동시에 신격화되다 보니, 성역화하는 것일뿐. 정명훈의 성과가 고전음악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까지 안고 갈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던 점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성과의 포장이 잘 안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주된 쟁점 중 하나가, "그게 뭐 예술이야? 난 예술로도 생각하지 않고, 거기에 왜 내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일반대중의 인식인 것 같다. 서양 고전음악이 고급예술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애호가 중 일부가 가진 "너희가 예술을 아니?"라는 고자세가,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안겨주는 것 같기도 하다. 시향 전 직원이었다는 사람의 글이 논리적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동시에 뭐랄까 역시 고자세랄까, 물론 김상수씨의 비논리에 일일히 상대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추측컨데 그 시향 대표와의 갈등도 이 점이 상당부분 작용하지 않았을까 좀 의심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대표의 몰상식한 행동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는 직원들에 대한 언사도 그랬지만, 서양 고전음악 애호가처럼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지극히 직원들의 입장에서, 예술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은 대표에 대해, 암묵적이지만, 집단적으로 내리깔고 보는 왕따가 존재했다든지, 그것이 무시와 같은 것은 당해보지 않고 살아온 프라이드 강한 대표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추측은 어디까지나 내 소설일뿐이니 전혀 중요치는 않다. 대표의 막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 한, 폭언이라는 결과에 대한 원인이 무엇일지 단순히 거슬러 올라가보았을 뿐.
신정아나 황우석 같은 사람을 보면, 맹목적인 우상화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이 가난한 사람이 예술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지 않기 위해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해도,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일본 여행을 보내주신 기억이 난다. 우리집은 늘 가난했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여행은 고사하고, 돈 벌러 나가는 것이 아닌 이상, 형편을 생각했다면 우리나라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선 안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이겠지만, 당시 친척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던 욕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뭐 하나 보태주는 것도 없이 욕은 어찌 그리 잘하는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일본어를 전공하게 되었던 것도, 중학생 때 한 그 여행 때문은 아니었는지 싶다. 돈도 못 벌면서 거지꼴로 이리저리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내가 누군가는 좀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니까, 제 걱정일랑은 붙들어 매시라니까요, 라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다. 솔직히 나도 모르니까 내일 일은. 이런 나를 스스로 창피해야 하나? 다만 시간이 지나고보면 이해할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왜 그래야 했던 것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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