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무척 우울했다.
남미로 가는 배를 찾느라,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던 가운데,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하고,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기 저기서 부정적인 대답만 끊임없이 듣다가,
모 해운회사에서 도움의 손길이 오는 듯 했다.
굉장히 큰 규모의 회사였고, 직급도 꽤 높으신 분이었기에,
그 사이 혹시 마음 변할라, 여러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코펜하겐 본사에 물어보겠다며 한 발 물러서던 그 분.
본사로부터 NO! 라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이건 뭔가? 희망고문인가?
맥이 빠졌다. 노력했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던 순간.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스타강사 김미경이라는 사람.
나도 사실 뭐 하는 사람인줄 잘 몰랐으나,
소신있는 발언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어떤 발언에는 나 역시 수긍도 갔다.
현재 두 가지 논란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인문학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과 논문 표절 건.
특히 논문표절 건이 문제가 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지구상에서 사장시켜 버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내 논문이라는 것이고,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이 사람이 잘못했다는 것은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정도 간다.
학위라는 것,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권위가 될 수도,
그저 휴지조각일뿐일 수도 있다.
그러한 것에 연연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그런 논문을 지도교수는 왜 통과시켜 주었는가? 라는 의견도 보였다.
크게 볼 때, 자격있는 교수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경우와,
자격없는 교수에게 검증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을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 같다.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이것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꿈이 있고, 모든 사람이 그 꿈을 이루려 노력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가령 한국에서 교사는 인기직업 중 하나다.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교사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니까. 그런데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닌 사람이
머리가 좋아 시험에는 합격해서 하고 싶지도 않은 교사가 되면,
교사 자신에게도 학생에게도 재앙이 될 수가 있다.
그 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서 교사가 된 것이 아니라, 안정적 직업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직에서 존경이나 사랑과 같은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왕따를 비롯해 이것이 낳는 부작용이 엄청나다고 본다.
또 시험에 합격한 것이 곧 잘 가르치는 것으로 연결되는가?하면 이 또한 별개의 문제다.
잘 알고 있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또 잘 가르친다는 것이 무언가?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쉽게 판가름할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눈에 쉽게 보이는 것들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학위장사가 판을 치는 것도 어쩌면 무리는 아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암스트롱 건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타깝게도 여러 거짓말들이 판을 치고 있고,
안타까운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거짓말에 나 역시 속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알고도 속고, 어떤 것은 몰라서도 속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 인생은 속이고 속으면서 산다고 봐야 한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일뿐.
우리에게는 모든 거짓말들을 일일히 판가름할 수 있는 눈이 없다.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거짓말의 고리를 끊으려 노력해야 할 뿐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알아서 그렇게 양심적이 되어 주면 좋겠지만, 인간은 더욱 이기적이 될뿐.
옆에서 누가 거짓말해서 성공하면, 나라고 왜 안 하고 싶겠는가?
반칙하지 않으면 멍청한 바보인 것을.
평생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되는 것을.
나에게는 답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을 뿐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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