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체조 부활하자 (동영상보기)
국민체조를 물론 식민지시대 또는 전체주의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알아서 운동 잘 하는 사람들에게는 국민체조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서 운동 잘 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도 있다.
얼마 전 스페인에서 필라테스 강좌에 참여해 보았다.
내 근육이 심각하게 많이 뻣뻣해져 있음을 느꼈다.
여행 중에 늘 격하게(?) 장시간 자전거를 많이 타기 때문에,
물론 자전거마저도 타지 않는 사람보다 내가 나을 수는 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시간 내서 근육을 풀어주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다. 돈을 내고 필라테스 강좌에 참여했을 때,
남들 모두 강사를 따라하고 있는데, 나만 혼자 멀뚱멀뚱 서 있을 수는 없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동조현상이라 부를 것이다.
가령 횡단보도에서 분명 빨간불임에도,
다른 사람들이 건너면 나도 모르게(또는 알면서도) 따라 건너게 되는 현상.
별 것도 아니야, 그냥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거지.
국민체조, 그것을 전체주의에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체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굳이 돈을 내고 학원에도 가고, 여러 강좌에도 참여하는 것 아닐까?
혼자서는 잘 안 되니까.
크리스천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혼자서 열심히 말씀도 잘 읽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논크리스천은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를 가거나 편안히 집에서 쉴 수 있는 일요일에,
굳이 교회에 나가는 것일 게다.
왜냐 하면 크리스천은 육체의 휴식 못지 않게 영혼의 휴식 또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앞서 말했듯이 혼자서는 잘 안 된다.
필라테스와 마찬가지로 나를 끌어줄 강사가 필요하고,
함께 필라테스를 배우는 수강생들끼리의 자극도 필요하다.
우리 강사가 필라테스계의 거목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내게는 거목을 알아볼 수 있는 눈도 없다. 안타깝게도.
난 필라테스에는 문외한이니까.
다만 필라테스(운동)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알고만 있을 뿐.
그냥 우리 필라테스 강사가 최고라고 믿는 수밖에.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난 필라테스 안 하고 요가 할 건데?
필라테스 안 하고 요가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나을 수도 있다.
운동이야 필라테스를 하던, 요가를 하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종교는 다르다고 본다.
나에게는 어느 누구에게도 필라테스를 꼭 해야 된다!라고 강요할 권리가 없고,
적어도 필라테스가 나을지, 요가가 나을지 한 번 생각해 보자고 말하는 정도일 뿐이다.
생각해 보고 선택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하는 거니까.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말해 놓고도 말투가 꼭 약장수 같네? -,.-
암튼!
그리고 게 중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아마.
필라테스가 좋은 건 알겠는데, 필라테스 수강생 중에 내가 싫어하는 애들이 있어.
그래서 가기 싫단 말이야.
이건 또 무슨 애기 같은 소리야?
사실 이런 애기 같은 소리를 내가 아는 교수님조차도 하셔.
내가 차마 교수 체면 뭉개버리고 싶지 않아 그 앞에서는 잠자코 있지만.
너가 싫어하는 애들은, 거꾸로 생각해 보면 걔네들도 너를 싫어해 사실.
너가 걔네들을 싫어하는 거를 걔네들도 뻔히 아는데, 걔네들이라고 너를 왜 좋아하겠어.
근데 너를 싫어하는 재수 없는 것들은 필라테스 교실 말고도 천지 삐까리라니까?
내 말은 재수 없는 것들이 필라테스 교실뿐이냐고?
학교고 직장이고 없는 곳이 없잖아?
이 세상은 어찌 보면은 재수 없는 것들 투성이야.
심지어는 우리 집안에도 있어. 근데 그거를 어떡해. 핏줄인데.
본질은 내가 필라테스를 배울 것인가 말 것인가에 있지,
필라테스 교실에 나오는 애가 싫다고, 필라테스를 시작조차 하지 않거나 하다가 중간에 그만 둘 건 없잖아?
누가 더 손해냐고?
다른 필라테스 교실에 가 보라고. 거긴들 재수 없는 애가 없겠냐고? 있다니까?
어디든 있다니까!
심지어는 강사가 재수 없을 수도 있어.
그렇다고 내가 필라테스를 왜 그만 두어야 되냐고? 좋은 걸 알고 있는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재수 없는 애들을 일일히 너가 바꿀 수는 없어.
너무 피곤한 일이야. 불가능하고.
그리고 말했듯이 어쩌면 너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재수 없는 존재가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돼.
문제는 필라테스 강사겠지.
필라테스 배우러 왔는데, 필라테스 강사가 엉뚱한 것 가르치면 안 되잖아.
그럴러면 너가 중심을 딱 잡고 있어야지.
방법은 필라테스 교재를 열심히 보는 수밖에 없어. 힘들지만.
강사가 헛소리하기 시작하면, 너가 나서서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해줘야지.
너도 몰라서 문제지만.
그리고 교재를 조금만 보고, 강사를 비판하는 것도 위험한 짓이야.
꼭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이 유식한 척은 더 한다니까? 그러면 멋있는 줄 알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야.
선생님이라고 완벽할 수가 없어.
선생님이 엉뚱한 것 가르치더라도, 누군가는 바른 말 할 수 있는 학생이 있어야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지. 학생은 아직 미숙하니까.
일단 교재를 열심히 독학해야 하고,
재수 없는 애랑도 싫지만 어울릴 수밖에 없어.
본론으로 돌아가서,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혹시 지금 영혼이 지쳐 있지는 않은지.
그 지친 영혼을 위해 교회에라도 한 번 가 보라고 권유하고 싶지만,
정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면, 그 지친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사람마다 다 달라.
지친 영혼을 달래는 방법이.
누군가는 미친듯이 술을 마셔.
누군가는 미친듯이 여행을 다닐 수도 있겠지.
운동을 할 수도 있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중독되기가 쉬워.
그만큼 영혼이 많이 지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 무엇에 중독되든, 안타깝게도 지금 처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거야.
순간이나마 잊을 수는 있겠지.
그래도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나쁜 것보다는 보다 바람직한 것을 택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바람직하다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바람직한 것보다는 최선의 것을 선택해야 된다고 봐 나는.
내 개인적으로는,
육체와 영혼의 국민체조 둘 다,
부디 부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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