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한 모로코인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일본어로 말을 건네셨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약간 경계는 했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 분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몰랐기 때문에.
어쨌든 나는 일본어를 알아는 듣지만, 한국에서 온 한국사람이라고 말씀드렸다.
모로코인 치고는 영어가 능숙하시길래, "영어를 잘 하시네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터키어, 일본어...도 구사하신다고.
이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다 구사하시나?
혹시 지금 나한테 장난을 치시는 건지.
장난이라고 해도 재미로 받아들이면 그뿐이었다.
할아버지는 69세의 연세라고 하셨는데, 왕년에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을 일주하셨다고.
궁금해진 나는 왕년이 언제인지 여쭤보니, 40년 전이라고.
과거에 모로코 경제상황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모로코에는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40년 전 상황이 지금보다 낫지는 않았을텐데,
할아버지도 젊으셨을 때는 날아다니셨구나 싶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나처럼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단다.
여행을 하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한국에서 한창 자리 잡고 열심히 일해야 할 나이에,
정신도 못 차리고 이곳 모로코까지 와서 방황하고 있는 내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었다.
대학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내셨다는데,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식민지배 때문인가 싶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젊은 친구들 빼고는 솔직히 대체로 영어 잘 못한다.
머리가 안 좋아서 못 한다기보다는,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큰 나머지 안 한 탓이 크다.
그런데도 그렇게 영어를 잘 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프랑스에서 공부는 하셨지만,
의식이 상당히 깨어 있으셨던 분인 것 같다.
자식이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손자와 대화하려면 영어 공부해야 된다고.
또 손자에게 아랍어를 영어로 가르쳐 주고 싶으시다고.
할아버지는 나를 만난 것이 너무 기쁘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조심스럽게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한테 돈을 조금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여행 중에 이렇다 할 수입도 없이, 때론 먹을 것도 걱정해야 하는 나로서는,
도와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요 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주머니에서 방금 5분 전에 모로코은행에서 막 찍어낸 듯 아주 빳빳한 200디르함 지폐를 내게 건네셨다.
200디르함은 우리나라 돈으로 한 3만원쯤 되는 돈인데,
모로코에서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를 생각할 때 그 가치는 더 높은 듯 하다.
물론 할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실 수도 있다.
하지만 여유로운 사람들이 늘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은 아니다.
낯선 이 할아버지를 처음에 나는 경계했었지만,
이 할아버지는 나를(또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정말 좋아하셨구나 싶었다.
내가 할아버지를 위해 해드린 것도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그 큰 돈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 올랐다.
#2
나는 지금 내가 가진 DSLR 카메라를 팔고 작은 카메라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였던 내 몸의 일부와 같은 카메라를 팔자니,
당연히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여러 단점도 많다.
부자도 아닌데, 부자처럼 보여, 강도에게 표적이 될 수 있다던지,
텐트 속에서 혼자 잘 때 도난의 위험이 있다든지,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도 좀 불편하고.
우연히 길에서 젊은 친구 두 명을 만났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해외여행까지는 무리고, 모로코 국내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 중 한 친구가, 자기한테 카메라가 하나 있는데, 나의 그런 사정을 듣고는,
카메라를 팔지 말란다. 작은 카메라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작은 카메라를 주겠다고.
듣자 하니, 남에게 쉽게 줄 수 있을 만큼 성능이 달리는 카메라 같지는 않았다.
사실 뭐 그 친구가 주려는 카메라가 좋은 카메라든, 후진 카메라든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그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내가 여행을 다니며 의미 있게 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고, 내가 자신의 카메라를 써 주면 자신은 영광이란다.
그러면서 내 분신과도 같은, 추억이 깃든 DSLR 카메라 팔지 말라고.
그 친구에게서 아직 카메라를 받지는 않았고, 여러 번 사양했다.
그 친구에게 카메라가 여러 대 있거나, 그 전부터 카메라를 새로 살 계획이 있었다거나,
그도 아니면 내가 그 친구 카메라가 마음에 들어서 적정한 값을 치루어 줄 수 있다면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그런 여유도 없다.
어쨌든 내가 놀란 것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카메라를 팔지 말란다. 작은 카메라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작은 카메라를 주겠다고.
듣자 하니, 남에게 쉽게 줄 수 있을 만큼 성능이 달리는 카메라 같지는 않았다.
사실 뭐 그 친구가 주려는 카메라가 좋은 카메라든, 후진 카메라든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그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내가 여행을 다니며 의미 있게 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고, 내가 자신의 카메라를 써 주면 자신은 영광이란다.
그러면서 내 분신과도 같은, 추억이 깃든 DSLR 카메라 팔지 말라고.
그 친구에게서 아직 카메라를 받지는 않았고, 여러 번 사양했다.
그 친구에게 카메라가 여러 대 있거나, 그 전부터 카메라를 새로 살 계획이 있었다거나,
그도 아니면 내가 그 친구 카메라가 마음에 들어서 적정한 값을 치루어 줄 수 있다면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그런 여유도 없다.
어쨌든 내가 놀란 것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인지.
한국에서는 DSLR이나 고가의 카메라 많이들 산다.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사놓고 몇 번 쓰다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집 안에 고이 모셔만 두다가 먼지만 쌓이는 경우도 많다.
먼지만 쌓이도록 집안에 모셔는 둘 수 있어도, 그냥 남 주기에는 아깝다.
그러한 이기심이 보편적 인간심리라 믿고 있는 내게 그 친구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또 이 친구가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자신의 학과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소개해서,
나를 돕기를 원하는 친구들로부터 돈을 좀 모아서 내 여행을 위해 보태주고 싶다고.
또 이 친구가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자신의 학과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소개해서,
나를 돕기를 원하는 친구들로부터 돈을 좀 모아서 내 여행을 위해 보태주고 싶다고.
함께 있던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페스에 가고 싶고, 짐들은 라밧에 두고 페스까지 히치하이킹으로 갈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페스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혼자 가려 하느냐며,
자신이 같이 가주겠단다. 그러면서도 먹을 것, 지낼 곳, 이동요금 그 어떤 것도 염려 하지 말라고.
또 모로코 남부에서 나중에 한 번 더 만나서 같이 여행하자고.
모로코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 스텝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모로코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 스텝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오랫동안 이 친구들을 알고 지낸 것이 아니라, 난 그냥 이 친구들을 길에서 만났을 뿐인데.
사실 아무리 멋진 곳엘 가도, 혼자 가서 헤매는 재미도 물론 있지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음은 물론이요,
동행한 사람과 잊지 못할 추억도 남길 수 있다.
이것은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 다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가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고,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음은 물론이요,
동행한 사람과 잊지 못할 추억도 남길 수 있다.
이것은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 다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가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고,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이 두 친구의 상식을 벗어난 친절에 나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3
라밧의 한 시장에 갔다. 모로코인 친구가 소지품을 조심하란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무리 중 소매치기가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시장 사람들이 나를 되게 좋아한다. 밥도 막 주고.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으나, 모로코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다 친절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냥 일반 관광객에게는 앞에서는 웃으면서도, 바가지를 씌울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관광객이 곧 돈이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것이 그들의 생업이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것이 그들의 생업이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다르다.
그들은 나에게 돈이 많지 않음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과 나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그들은 내가 배가 고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모로코까지 힘들게 온 나를 좋아하니까,
어디를 가든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의 용모를 기준으로,
나는 이상하게(또는 다르게) 생긴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보든 사람들마다 나만 보면 웃고 난리다.
그게 싫었다. 팔레스타인이나 요르단에 있을 때만 해도.
한 두 사람이 그러면 모르겠는데,
어디를 가든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나 때문에 웃어대면 사실 힘이 든다,
이미 팔레스타인이나 요르단에서 경험했기 때문인지,
그런 반응들이 이젠 전보다는 익숙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떤 이유에서든,
내가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당장 내 주머니에 돈은 얼마 없지만,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음이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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