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1 - 4:12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핍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쉽게 말해 자신들이 잘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예수를 죽여놓고도, 잘못을 전혀 깨닫고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자신들보다 사도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사람들에게의 인기나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들이
그동안 누려왔던 권위를 더 이상은 누리기 어려워질 것을 두려워하였다.
엄밀히 말해 사도들이 행한 일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음을 알아야 했음을.
자신들은 사도들처럼 행할 수 없음으로 인해 사도들을 질투하지 않았나 싶다.
허나 그러한 부정적 감정 및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임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
가둘 수 없는 말씀의 능력, 막아도 퍼져 나가는 복음의 영향력을 언제 어떻게 경험하나요?
→완전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의 사리사욕으로 막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때에 성취될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말씀의 능력, 복음의 영향력은 성취되고 있다.
사도들이 행한 일이었다면, 사도들만 가두어 두어서 해결되었겠지만,
하나님께서 하셨기에, 오천 명에게 복음이 퍼져 나갔다.
악인의 성공이 길어 보일지언정 잠깐일뿐이고, 헛된 성공이다. 모든 것이 사필귀정이 될 것이나,
사필귀정의 기준은 나나 다른 인간이 아닌, 그 분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 분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막아도 퍼져 나가는 복음의 영향력은 당장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결국에는 깨닫게 된다.
끝내 깨닫지 못하는 자들도 있겠으나.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인간들에게는 무엇이 귀하고, 귀하지 않은지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없다.
모리타니아에서 세네갈로 넘어갈 때 60km 정도 사막에서 물 없이 지나갔다가,
졸도 직전까지 이르러 어느 주유소에서 수도꼭지가 있길래,
극심한 갈증과 허기에 살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미지근하고 맛도 없었지만, 갈증이 해결되어 좀 살만 했다.
그런데 주유소 직원이 비닐 팩에 담긴 차가운 생수를 가져다 주며,
수돗물은 좋지 않으니, 이 물을 마시란다. 마셔보니, 과연 물맛이 다르긴 다르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통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물은 그냥 차갑기만 했을 뿐,
수돗물인 것은 매한가지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돗물보다는 낫겠거니 하고 껍질만 다른,
여전히 수돗물을 생수라 착각하며 마시고 있던 것이다.
비닐 팩에 담긴 물이 수돗물임을 아는 자들은,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마신다.
근데 그 페트병에 담긴 물은 과연 정말 생수일까?
그 물 또한 수돗물이거나 어쩌면 수돗물보다 못한 물은 아닐까?
비슷한 예로, 원효대사가 여행 중 밤에 무덤가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잠자리 옆 바가지의 물을 마셨다가, 그 물이 밤에는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바가지는 해골이었고, 달콤했던 그 물은 비가 고여 썩어 있던 물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분별력 없이 늘 자신만의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버리고 죽이기까지 이른 것이다.
하지만 그 하찮아 보이는 것이 사실은 가장 귀한 것이었음을.
예수의 죽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 하찮은 것 하나 없다. 그 하찮은 것이 바로 나를 구원할 머릿돌이다.
버려진 돌을 보배로, 비참한 십자가를 구원의 능력이 있는 십자가로 바꾸신 하나님께
내가 드릴 고백은 무엇인가요?
→내 죄가 너무 커, 죽어 마땅함에도 보배로 다시 쓰시려는 하나님의 은혜 갚을 길 없다.
죽어야 한다면 죽어야 한다. 내 안의 잘못된 것들은 다 죽어야 한다.
쉽지가 않다. 죽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니까. 유대 종교 지도자들처럼.
하지만 죽지 않으면, 다시 살 수도 없다.
하찮은 나를 가장 귀하게 바라보시고, 머릿돌로 사용하시려는 주님께 감사하고,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하찮은 존재란 없기에,
자신들이 보배이고 머릿돌임을 모르고 있는 자들을 사랑으로 섬길 줄 아는 자 되게 하여 주소서.
내 안의 유대 종교 지도자의 교만한 마음을 죽여 주시옵소서.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 받는 자 되게 하여 주소서.
더 낮춰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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