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3일 토요일

수잔브링크의 아리랑



유럽의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모든 나라에 다 가본 것은 아니다.
그 중 한 나라가 덴마크이다. 덴마크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만난 덴마크인 친구들은 몇 명 있다.
그 중 한 명은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친구가 있다.
너무 어릴 때 입양되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고, 정체성은 덴마크인이다.
난 그 친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기 전에는,
한국적 용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도 나아주신 부모님 중 한 분은 외국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최진실 주연의 영화 "수잔브링크의 아리랑"이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그 친구는 영화 속 최진실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좋으신 부모님을 만나, 공부도 할만큼 했다.

덴마크에는 그 친구처럼 한국으로부터 입양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 친구 말로는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아기가, 덴마크에만 1만명 정도 된다고.
덴마크에만 1만명이면, 다른 나라까지 합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입양된 것인지.
우리나라가 한 때(어쩌면 지금도) 아동수출대국의 오명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외면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데에는, 우리의 부끄러운 면은 감추고 싶어했을 정부도 한몫 했을 것 같고.
어느 부모인들 핏덩이인 자식을 버린다는 것이 쉬울 수 있을까?
물론 실제로 버리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극히 소수일뿐이고,
그들의 사정을 알기 전에는, 함부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친구는 나아주신 부모님을 그다지 만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또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원망하고 있지 않으니, 혹시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이 있다면,
그냥 내려놓고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만큼은 나아주신 부모님께 전하고 싶다고.
나는 그 친구의 그런 태도를 높이 사고 싶다.
입양이 안 되어봐서 난 사실 모르겠지만,
나의 부모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면,
그 절망감에 삐뚫게 살고, 어쩌면 내 삶을 망쳐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친한 친구 중에도 그런 유형이 있다.
친구 중에 공부와 운동을 잘 했고, 남달리 영특한 면이 있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는 입양된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내 짧은 생각에는, 부모님이 이혼하셨더라도, 자신의 삶까지 비관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학교에서도 이상행동을 보이고, 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살더니,
결국에는 고등학교 시절 자퇴했다. 모두가 꼭 학교를 다녀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 똑똑했던 친구가, 교육의 기회조차 놓치게 된 것 같아 나로서도 아쉬웠다.
친구의 그런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안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굳이 그러는 모습이 곁에서 보기에 많이 안타까웠다.


유럽과 한국 중 어느 쪽의 이혼률이 더 높은지는 모르겠다.
유럽에 와 보니, 이혼한 부부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특히 프랑스에서 여행할 때는 거처를 옮길 때마다 이혼한 사람들을 만났다.
가령 한 이혼한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딸이 전 아내 집에 가 있으니, 너는 내 딸 방에서 자면 된다고.
몇 일 후, 또 다른 집에서 이혼한 아주머니가 같은 말을 한다.
우리 아들이 전 남편 집에 가 있으니, 너는 내 아들 방에서 자면 된다고.
내가 거의 매일 같이 이혼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아주머니께 말했더니, 아주머니 왈, 

"너는 운이 좋은 거야! 내가 이혼 안 했으면, 너 오늘 잘 곳도 없었을 거 아냐."
라며 농담을 하신다. 또 어떤 친구는 이혼은 프랑스의 문화 중 하나!라는 농담도 한다.
이미 지난 일이니, 그렇게 농담할 수 있다고 해도,
이혼이라는 것이 그 분들께 있어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혼했더라도, 꼭 혼자 지내는 것만도 아니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와 한 집에 같이 살기도 한다. 전 배우자 자식도 함께.
나로서는 그런 분위기가 참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자식들이 그렇게 어두워 보이지도 않고,
그냥 부모님의 삶은 부모님의 삶일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막 나가며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 바빴던 친구와는 대조적이다.


유럽에서는 결혼 전 동거도 일반적으로 보인다.
젊은 남녀가 결혼하지 않은 채, 같이 살고 또 그렇게 살면서 

서로의 부모님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부모님 역시도 결혼 안 한 남자친구, 여자친구의 관계일 수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는 것을 보통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개방적인 유럽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본다.
다만 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필요이상의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하다.
당연히 쉽지는 않다. 사람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어쩌면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일일 수도 있다.
요즘처럼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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