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한국인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것이다.
대충 짐작은 간다. 왜 그리들 많이 자살하는지.
쉽게 말해,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는 게 즐겁다면 굳이 자살할 이유는 없으니까.
언제인가 통계를 통해 본 바대로라면, 리투아니아가 2위인가 3위를 기록했다.
리투아니아 여행에서 좋은 인상을 가졌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과였다.
스치듯 지나가는 여행을 통해서는 알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지나쳐 간 곳 중 싫어하는 나라는 어느 곳 하나 물론 없지만,
불가리아도 정말 좋아라 하는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불가리아인 내 친구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나는 것이 좋을 거라며,
너무 많이 알면 다친다는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몇몇 내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
한국인인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너무 행복하단다.
나도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물론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의 그런 반응이 나를 의아케 만들기도 한다.
한국이 그렇게 좋은 곳이었나 하고.
지브랄타에서 리투아니아 출신 한 친구를 만나서 물어보았다.
도대체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은 왜 그리 높은 건지.
그 친구는 정체성의 부재로 설명해주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투아니아인에게 정체성이 없는지?
그리고 정체성의 부재와 자살이 무슨 관계인지?
리투아니아는 작은 나라로써, 늘 큰 나라들 사이에 있었다.
오랫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아왔고, 마침내 독립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독립은 이루었지만, 지금은 EU가 새로운 주인이다.
주인만 바뀌었을뿐, 여전히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사는 약소국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리투아니아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살로까지 이어진다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먼저 치고 나간 후,
식민지배라는 뼈아픈 역사를 겪고,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우리들 스스로 파괴해버린 후,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전을 이루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가령 거리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고,
판소리 같은 걸 듣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의 교육. 사실은 다 서구의 시스템이다.
서구가 맞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들여와 베껴서 가르치고 있는 것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것이 없다시피 하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는 언제나 옳고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이라는 식으로 주입받았다.
유럽에 와도 난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건물들이나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는 다를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는다.
무엇이 우리를 한국인이게 하는가?
나는 누군가? 왜 열심히 일하는가?
나는 누가 가르쳐준대로 사고하는가? 아니면 내 머리로 스스로 사고하는가?
정말 빨리빨리여야만 하나? 지면 정말 안 되나? 이겨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나?
우리는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아니, 애초에 그러한 질문을 던지지조차 않고 있지는 않는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그런 한가한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내일도 우리는 달려야 하니까. 또 이겨야 하니까.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러다 지치고 너무 힘이 들어,
막다른 길 다다르면 극단적으로 자살하는 거다 결국.
나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자살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삶이 버텨내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삶은 기대가 되고, 즐겨야 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우선,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왜 사는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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