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0일 월요일

헤어스타일의 변화와 세네갈 이모저모 [자전거 세계일주]





모리타니아와 세네갈의 사막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물도, 식량도, 돈도 없었고,
페달 한 번 밟기가 그리 힘들 수가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 강한 바람을 동반한 눈앞을 가리는 흙먼지,
곳곳에 보이는 말라 죽어버린 동물들.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느꼈다면 과장일까?
내가 도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고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하는 회의감마저 몰려왔다.
수십 번도 더 '여기서 이제 그만 여행 접어야 하나? 결국 여기까지인가?'
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쨌든 흐려지는 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물이 충분히 않았기 때문에, 
수돗물은 물론이요, 가끔 우물물도 마셨다.
깨끗한 물일까 싶은 의심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지금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였으니.
또 매번 생수를 사 마실 수 있을 만큼 금전적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서는 마셔야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점은, 현지인들도 그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
음악이 없는 여행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안타깝게도 모리타니아 누악쇼트의 한 시장에서 
어느 도선생께서 내 주머니의 아이팟을 쥐도 새도 모르게 소매치기해 가셨기에.
누구를 탓하랴? 더 주의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세네갈에서 압둘 아지즈라는 한 아저씨의 가족을 만났는데,
지친 내게 무척이나 친절히 대해주셨다.
아저씨의 영어는 능숙하셨지만, 
내가 프랑스어나 월로프라는 언어를 못했기에,
다른 가족들과 의사소통하기는 조금 힘들었지만.
의사소통 대신에 아저씨의 세 딸이 내 머리를 땋아 주었다.
땋은 머리가 나랑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긴 생머리가 재미없고 지겹던 참에 신선한 변화였다랄까?





압둘 아지즈 아저씨 가족






아저씨가 앞으로는 배고프지 말라며 건빵 100개를 사 주셨다.








세네갈에서는 동물들의 영역과 사람들의 영역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어디서든 갑자기 염소며, 소, 양과 같은 여러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새들의 색깔이 아름다운데, 처음 본 파랑새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아쉽게도 사진만 찍으려고 하면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던 파랑새.
어쩌면 바로 그 점이 파랑새다운 것일 수도. 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사진은 어미 돼지와 새끼 돼지




차가 오든 말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독특한 색깔을 가진 도마뱀




죽어 있어 한편으론 마음이 측은했지만, 왜 그리 귀엽게도 누워 있던지.




세네갈 사람들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특히 그림이.






언제 어디서든 축구를 하는 아이들




디에메라는 학교 선생님을 생루이에서 만났다.
우리는 세네갈의 일부다처제 문화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은,
이 세상에 3명의 남자가 있고, 3명의 여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1명의 남자가 3명의 아내를 가져 버리면, 
나머지 2명의 남자는 어떻게 결혼해야 할까?였다.

그러자 디에메는 내 말이 맞지만, 
이 세상에 여자가 3명뿐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여자는 더 있다고.
그 많은 여자들을 미혼인 상태로 그냥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단다.

두 번째 질문.
아내가 그렇게 많다는 것은, 자식 또한 많아질 것을 의미하는데,
그 많은 자식들을 도대체 어떻게 부양하는가?

망설임 없이 돌아온 그의 대답.
아니, 알라가 있는데 무슨 걱정?
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디에메의 대답 앞에,
나는 말문이 막혀 차마 더 이상의 질문은 떠올릴 수 없었다.

아무튼 나는 아내가 한 명만 있어도 버거울 것 같은데,
여러 명의 아내라. 정말 디에메 말대로 좋은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






식사 후에 입가심으로 세네갈의 대표과일 망고를 먹었다.
씨앗 부분에 여전히 망고가 많이 남아 있곤 하는데,
그 씨앗에 붙은 망고를 먹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손과 입 주변에 망고를 잔뜩 묻혀가며 먹다보면, 
멋있는 이미지는 그냥 포기해야 된다고 보면 된다.
옆에 있던 한 아저씨가 마치 우리 나라에서 뼈다귀를 들고 뜯어 먹듯이,
들고 뜯어 먹으라며 멋있는 척 하려고 애써 외면했던 망고 씨앗을 나에게 주시길래,
멋진 이미지는 포기하고, 망고 본연의 맛을 즐기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한편 사진 속 여성은 디에메 처제인데, 나 보고 한국에 돌아가거든, 
한국산 쌀을 좀 세네갈로 보내달라던 말이 왠지 기억에 남는다. 





생 루이의 항구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일단 아주 더럽고 강가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들로 인해 엄청난 악취가 진동하던 항구.
설령 그 언저리 어딘가 시체가 놔뒹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곳.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내게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아이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진 않아도, 
알아서 각자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작은 키에도 높은 배에 매달려 올라가서는, 
어부들의 일을 도와주고 생선을 한 마리씩 얻곤 했다.
초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얻은 생선의 대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스윽 도려내 버렸다.
어떤 아이는 배 안에 고인 물을 열심히 세네갈 강으로 퍼내기도 했다.
그 옆에서 양파 따위의 채소를 파시는 어머니의 고단한 어깨를 주물러 주던 소녀의 싱그러운 미소.
다른 옆으로는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고무줄을 넘던 아이들.
무언가 그리운 풍경들.











한 소녀는 등에 동생인 듯 한 아기를 업은 채로,
부지런히 거리를 쓸고 있다. 빗자루질하는 동작에서 힘이 느껴지고 제법 재빠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불만스러운 얼굴은 아닌 듯 하다.
그저 매일같이 하는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오밥나무





도대체 사고가 어떻게 났길래 트럭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인지.





바오밥나무랑











우리 나라의 KOICA가 세네갈을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다.





고맙게도 KOICA 직원 분들이 바쁜 중에도 이틀 밤 재워주셨다.




이 사진은 작년 11월, 프랑스에 있을 때 찍은 것인데,
로랑스라는 마음씨 좋으신 아주머니를 뵜을 때이다.
내가 세네갈에 있다고 하자, 감사하게도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다카르에서 (구할 수도 있겠지만),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브레이크 패드를 좀 보내주실 수 있을지 여쭤보았다.







부탁드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주머니 친구 분을 통해,
세네갈로 보내주셨다. 보내주신 날이 아주머니 생신이셨는데,
선물을 드리지는 못할 망정, 선물을 도리어 받게 되다니,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아주머니는 프랑스에서도 무척 잘 해주셨는데,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도와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주머니께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으로, 다카르에서도 혼자가 아니구나 싶었다.






세네갈을 여행하다 보면, 길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때마다,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마음이 편치 못했다.

말릭이라는 이름의 한 세네갈 친구가 Empire des enfants라는 
단체를 통해 아이들을 돕고 있었다.
내달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세네갈 방문시에,
 단체도 찾을 예정이란다.
그의 방문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래본다.

YES, WE CAN!!!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 골라 보시지요







다카르에서 남미로 가는 배를 다시 찾으려 계획 중이다.
다시 힘겨운 시간이다.
확실한 것이란 없기에. 그 불확실성이 나를 흥분케 하기도,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치게 많은 걱정을 하고 싶지는 않다.
걱정을 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배를 못 찾을 것도 아닐 것이고,
못 찾을 배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여러 문제 투성이다.
배를 찾는 동안 묵을 곳, 매 끼니, 
배를 찾지 못하였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비관적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배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또 매일 같이 듣는 NO라는 대답이 정신건강에 좋을 리도 없다.
매우 피곤하고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도뿐이 없겠지만.
실낱 같은 희망만을 바라보고.


다행히 다카르에서 사업을 하시는 한 사장님을 뵈어서,
지금은 그 분의 공장 사무실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카리스마와 화끈한 성격을 가지신 이 사장님이 말씀하시기로,
배 찾으려면 머리부터 당장 깎으라고.
그렇다고 화를 내신 것은 아니고,
단정한 인상이 배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라는 말씀 정도였다.

한국을 떠난 후 2년 남짓 자르지 않았던 머리.
2년 동안의 추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머리를 나는 결국 자르게 되었다.
기뻐할 사람들이 몇몇 떠오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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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와 내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
힘을 내요, 미스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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