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9일 수요일

사랑스러운 반칙자들





살면서 반칙을 때가 있다. 
반칙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애초에 반칙을 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반칙 자체를 긍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무단횡단 정도(?) 수도 있고, 그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에 대한 벌만 달게 받으면 된다. 죽을 죄는 아닌 것이다. 여행 가끔 반칙자들을 만난다. 반칙의 수준이 발칙하거나 기발한 경우들이 더러 있다. 

번은 S나라에서 친구가 나에게 티셔츠를 하나 선물해주고 싶어했고, 기념품 가게에서 가격을 물었더니, 티셔츠 치고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 그래서 친구는 가격을 깎아줄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된다는 대답을 들었단다. 하지만 친구는 나에게 티셔츠를 선물해주고 싶었기에 비싼 값을 치루고 결국 티셔츠를 사서 내게 주었다. 그러면서 티셔츠 말고도 열쇠고리를 하나 주었는데, 그것도 것이냐고 물으니, 사실은 주인이 괘씸해서 하나 슬쩍 했단다. 그러다 걸리면 어쨌으려고 너무 위험한 짓을 아닌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한 기분도 들었다. 반칙임을 알고는 있지만. 

번은 다른 S나라에서 여행할 , D나라에서 여행온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들이 어떻게 S나라까지 오게 되었는지 듣게 되었다. 참고로 친구들이 부유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친구들의 나라는 부유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 기차를 무임승차해서 여러 나라를 거쳐 D나라에서 S나라까지 왔다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에서 그들이 기차를 무임승차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대단히 의외였다. 그래서 무임승차했던 것이 걸리지 않았는지 물으니, 걸리지도 않았지만 걸릴 때마다 대개의 경우 기차에서 쫓겨났고, 그러면 다음에 오는 기차를 무임승차해서 결국 멀리 S나라까지 왔단다. 무임승차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없지만, 보통은 티켓을 사서 기차를 타는 상식이라면, 상식을 뒤엎어버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라 있겠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누가 그렇게 몰라서 하느냐고. 반칙을 해서는 되는 아니냐고. 
생각에는 자신이 반칙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 저지르지 않은 것이 자신에게 떳떳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반칙을 것이 잘했기 때문에 박수쳐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깡다구 하나만큼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살면서 그런 깡다구로만 산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 그런 객기로 험한 세상을 버텨나갈 상황도 때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쩌면 이러한 반칙들은 권력형 비리와 같은 부조리에 비하면 반칙도 아니다. 그렇다고 작은 반칙은 반칙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우리는 사소한 반칙자들에게 손가락질 하느라, 정작 반칙자들은 놓치고 있는 아닌지. 그리고 한편으론 없는 사람들은 반칙할 상황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가끔 마주치게 되는 이런 피라미 반칙자들이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냥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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