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하루만 더 있다가 가 [자전거 세계일주]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직업은 DJ.
여행자들에게는 어쩌면 바이블이라고도 할 수 있는 론리 플래닛, 난 거의 읽은 적이 없다.
그냥 난 나만의 기억을 만들고 싶다. 물론 남들 가는 곳 나라고 해서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냥. 왠지 론리 플래닛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론리 플래닛을 읽은 어느 친구가 그러는데, 론리 플래닛 왈,
포드고리차는 언젠가 유럽에서 가장 구린 수도 랭킹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단다.

암튼 그 포드고리차에 사는 DJ 친구 집에서 딱 이틀 밤만 머물고 가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야 되는 날 친구가 하루만 더 머물고 가라!고 해서,
나 역시 그 친구가 마음에 들었고, 계획을 바꿔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면, 또 하루만 더! 또 그 다음 날이면 하루만 더!하더만,
결국 한 2주는 묵었던가? 싶다. 그 유럽에서 가장 구리다는 곳에서.
다른 집 같으면 하루만 묵어도, 아무래도 내 집이 아니다 보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좀 불편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도 그 친구 집에서는 그렇지가 않았고, 참 편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구린 곳에서 2주 동안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
1. 우선 친구가 아무래도 DJ였기 때문에, 지내는 동안 내 귀는 호강을 했다.
또 몬테네그로까지 자전거 타고 온 내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는지,
친구 통해 TV출연도 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르지만, 몬테네그로에서는 내가 좀 유명한 것 같다. 농담이다.
그 방송영상은 사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보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2. 그리고 친구는 내게 자신의 예전 사진을 보여주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예전에는 당시와 달리 뚱뚱한 체격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핸섬한 얼굴로 돌아오게 된 비결은 밤마다 하는 조깅이었다.
자신은 가진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헬스장에 가기도 좀 그렇고,
매일 밤 거르지 않고 뛴단다. 그래서 나도 같이 뛰었다.
뛴다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고,
뛰니까 오랜 여행으로 조금은 지쳐 있던 심신이 나아졌던 기억이.
(사족이지만, 난 살이 찌지도 않았고, 뛰기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뛰면 정말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가 좀 있는 것 같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할 때, 개인적인 여러 가지 힘든 일들로 기분이 무척 다운되어 있었는데,
다른 것은 별로 볼 것이 없지만, 해변이 참 멋진 라다 틸리라는 곳에서,
해가 지고 있을 때, 혼자서 감성에 젖어 맨발로 차가운 바닷물을 튀기며 몇 백 미터를 달리고 나니 그래도 기분이 좀 나아졌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기분이 좀 우울하시면 달려보시기를 권한다.)

3. 친구 어머니가 해 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난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 감사할 일이 좀 있다.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하시기 때문이다.
엄마가 요리를 너무 잘 하셨으면, 엄마 밥이 최고!이러면서 입이 좀 까다로워졌을 것 같기도 한데, 우리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하시다 보니, 세상의 무엇을 먹어도 참 다 맛있고 그렇다. 엄마 미안
친구는 어머니가 매번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는데도, 식사 후의 친구의 접시를 보면, 이게 다 먹은 건지, 아니면 먹다 만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식사를 마치곤 했다.
물론 내 접시는 핥듯이 먹어서, 뭐 설거지랄 것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

아쉽게도 친구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내가 몬테네그로의 언어를 못하는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칠레의 한 건축가 친구 집에서도 어머니가 참 요리를 잘 하셨다.
매 끼마다 어찌나 화려한 음식들이 나오던지. 그런 기회 흔치 않다.
참고로 칠레에서도 그 집에서만 유독 그랬던 것이지,
굳이 비교하자면 음식의 다양성이나 맛에 있어서는 한국이 훨씬 낫다고 본다.
어머니는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나를 보시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라고 하셨다.
그 친구의 어머니와도 아쉽게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근데 밥이라는 게 참 신기한 면이 있다.
몬테네그로의 어머니도 그렇고, 칠레의 어머니도 그랬는데,
지내는 동안 어머니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헤어질 때면 한 바가지씩 쏟아져 내리던 눈물들.
왜 그랬던 걸까. 아마도 어머니들의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실 그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돈도 안 냈는데.
일도 안 했는데.

어머니,
조건 없이 거저 주신 그 사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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