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자전거를 자주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호되게 혼을 내셨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내가 제일 속이 상하는데, 혼까지 나야 하다니.
1년짜리 여행자보험이 만기 지난지 꽤 오래되었지만, 한 동안 갱신하지 않았다.
사실 죽어서 천국 가면 끝인데, 죽은 다음에 보험이 다 무슨 필요인가.
그게 다 사람의 불안감 갖고 하는 장사일뿐이지.
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가는 마당에 가족에게 좋은 일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없는 돈에 보험을 새로 들었다. 그런데 무슨 그런 황당한 규정이 있는지,
여행 중 보험카드를 소지하지 않으면 혜택을 못 본다고.
죽어가는 마당에도 그 잘난 카드는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그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친구에게 주소를 물어 내 대신 받아줄 수 있겠는지
부탁을 했다. 친구가 우편물은 잘 받았는데, 받으면서 관세를 우리 돈으로 7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단다. 카드 한 장 받는데 무슨 7만원씩이나 냈는지 어이가 없었다.
물어보니 한국에서 동생이 보낸 것은 카드뿐이 아니라, 책과 양말, 보온병까지 보냈단다.
순간 짜증이 팍 났다. 책, 양말, 보온병 그런 것들 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인데,
왜 부탁하지도 않은 것을 보냈는지.
사는 데 돈이 들었을 것이고, 보내는데 돈이 들었을 것이고, 친구가 받으면서 관세로 7만원 돈이 들었고. 무슨 돈을 그렇게 허공에 뿌려야만 했던 것인지.
안 먹고 안 입어 아껴가며 여행한 시간들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보험도 없는 돈에 무리해서 든 것인데. 며칠 지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경솔했던 것 같다.
동생 딴에는 생각해서 보내준 것일 텐데. 내가 너무 돈에만 신경 쓴 것 같아서.
마치 자전거 잃어버려 속상한 내 마음은 모르고 혼을 내신 아버지처럼.
잘못은 훔쳐간 놈이 잘못이고, 잘못은 불안을 조장해 뜯어먹는 보험사며
개인의 일회성 작은 소포에까지도 관세를 매기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있는 것인데.
내가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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