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0일 화요일

자전거 분실, 여행자 보험카드



어린시절 자전거를 자주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호되게 혼을 내셨다. 
나는 억울했다. 내가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내가 제일 속이 상하는데, 혼까지 나야 하다니. 

1년짜리 여행자보험이 만기 지난지 꽤 오래되었지만, 한 동안 갱신하지 않았다. 
사실 죽어서 천국 가면 끝인데, 죽은 다음에 보험이 다 무슨 필요인가. 
그게 다 사람의 불안감 갖고 하는 장사일뿐이지. 
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가는 마당에 가족에게 좋은 일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없는 돈에 보험을 새로 들었다. 그런데 무슨 그런 황당한 규정이 있는지, 
여행 중 보험카드를 소지하지 않으면 혜택을 못 본다고. 
죽어가는 마당에도 그 잘난 카드는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그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친구에게 주소를 물어 내 대신 받아줄 수 있겠는지 
부탁을 했다. 친구가 우편물은 잘 받았는데, 받으면서 관세를 우리 돈으로 7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단다. 카드 한 장 받는데 무슨 7만원씩이나 냈는지 어이가 없었다. 
물어보니 한국에서 동생이 보낸 것은 카드뿐이 아니라, 책과 양말, 보온병까지 보냈단다. 
순간 짜증이 팍 났다. 책, 양말, 보온병 그런 것들 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인데, 
왜 부탁하지도 않은 것을 보냈는지. 
사는 데 돈이 들었을 것이고, 보내는데 돈이 들었을 것이고, 친구가 받으면서 관세로 7만원 돈이 들었고. 무슨 돈을 그렇게 허공에 뿌려야만 했던 것인지. 
안 먹고 안 입어 아껴가며 여행한 시간들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보험도 없는 돈에 무리해서 든 것인데. 며칠 지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경솔했던 것 같다. 
동생 딴에는 생각해서 보내준 것일 텐데. 내가 너무 돈에만 신경 쓴 것 같아서. 
마치 자전거 잃어버려 속상한 내 마음은 모르고 혼을 내신 아버지처럼. 
잘못은 훔쳐간 놈이 잘못이고, 잘못은 불안을 조장해 뜯어먹는 보험사며 
개인의 일회성 작은 소포에까지도 관세를 매기는 아르헨티나 정부에 있는 것인데. 

내가 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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