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7일 수요일

지브랄타, 유럽의 마지막 식민지인가?



"지브랄타, 유럽의 마지막 식민지인가?"


출처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박신호 선교사님 



지브랄타를 통해 독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는 면에서 흥미로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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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이며, 못다 이룬 사랑이 더 애절하다." 일명 "자이가르니크(Zeigarnik)효과"라 부르는 이 현상은 스페인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이 지난 2004년, 지브랄타 점령 300주년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했을 때 스페인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스페인은 지브랄타가 "시대착오적인 유럽의 마지막 식민지"라며 반환해 줄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은 압도적인 다수가 영국령을 지지했다는 주민들이 투표한 결과를 내세워 "거주자들의 의지에 반해서 이양할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영유권분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유럽 연합 회원국이지만 영토문제 만큼은 한치의 양보도 없다. 지브랄타, 과연 유럽에서 남아 있는 마지막 식민지인가?

발에 박힌 가시, 지브랄타

이베리아반도 최남단 끝자락에 붙어 있는 지브랄타는 길이 약 8㎞, 폭 3㎞, 총면적 6.5㎢, 인구 3만여 명, 그리고 영국의 직할령으로 되어 있다. 영국에게 지브랄타는 금반지에 붙어 있는 다야 몬드나 진주만큼이나 소중한 것이겠지만, 스페인에게는 자기 본토 안에 있는 땅덩어리를 떼어주었으니 발가락이 잘린 심정일 것이다. 지브랄타는 유럽과 아프리카 양 대륙을 잇는 길 몫에 있을 뿐 아니라 동서로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그야말로 "군사 전략 요충지"이자 황금 땅이다.  1년에 400만 명 이상이 쏟아 붓고 가는 짭짤한 관광수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황금 땅이 영국에 넘어간 경위는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00년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2세가 왕위를 계승할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죽게 되자,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필리프 앙주공"이 펠리페 5세1700-46)로 즉위하였다. 이는 양국이 해상권, 특히 신대륙 무역을 장악하기 위한 제휴였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영국과 주변국들은 왕위 계승을 인정할 수 없다며 트집을 잡았다. 영국은 당장 에스파냐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는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3국과 동맹을 맺고 선전포고를 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이란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서 영국 연합군은 1704년 8월4일 지브랄타를 공격하여 불과 6시간만에 스페인을 굴복시키고 말았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후 전쟁이 종결될 즈음 쌍방은 1713년에 "위트레흐트조약"(Treaty of Utrecht)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펠리페 5세의 에스파냐 왕위를 승인한다"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허드슨만, 아케디아 등 미국 식민지 일부를 할애 받고 에스파냐로부터 지브랄타, 미노르카 섬을 획득한다" 대신 "프랑스, 에스파냐는 네덜란드의 상업상 특권을 승인한다."라고 채결하였다. 이로써 영국이 가장 많은 것을 얻었고, 프랑스와 에스파냐는 네덜란드 북부 일부를 할당받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300년 전 펠리페 5세가 영국에 지브랄타를 넘겨주고 "발에 박힌 가시"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얼마나 뼈아팠는가를 알 수 있다.
나폴레옹 함대도 통과 못한 지브랄타

지브랄타를 내어준 지 100년이 지났을 때, 나폴레옹(Napoleon, 1769-1821)은 스페인에게 힘을 합쳐 영국을 침공하자고 제의해왔다. 이미 나폴레옹은 20년 동안에 걸쳐 유럽을 장악해 갔고 마지막 영국을 남겨 놓은 상태에 있었다. 비록 강압적이고 거절할 수 없는 요청이었지만 그럼에도 스페인이 기꺼이 나폴레옹의 편에 선 것은 "지브랄타"에 대한 한 가닥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부질없는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1808년 프랑스군은 오히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점령한 후 민중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거기에다 나폴레옹은 스페인 왕을 물러나게 하고 그의 형인, 조셉을 국왕 자리에 앉힘으로써 점령군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근대 미술의 혁명아"로 불리는 스페인 화가 고야(Goya)는 "1808년 5월 3일 학살"이란 그림을 통해 나폴레옹의 만행을 폭로하기도 했다. 철학자 "오르테가"는 이런 고야를 "괴물"이라 비난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그렸을 뿐이다."라고 두둔하고 있다.

1805년 9월부터 넬슨(1758-1805)제독은 프랑스와 스페인연합군의 함대가 지브랄타를 통과 나폴리로 출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넬슨은 이들의 함대가 지중해로 통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일찍부터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넬슨이 이끄는 42척의 함대는 10월 20일 이미 지브랄타 해협과 주변에 배치한 상태였다. 하루가 지난 21일 아침, 마침내 프랑스, 스페인 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은 각자 그 임무를 다할 것을 기대한다" 1805년10월21일,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 함대 사령관, 넬슨 제독이 기함 "빅토리아"(Victory)호 마스터에 높이 내건 문구이다. 스페인의 남부 가디스와 영국령 지브랄타 사이에서 일어난 트라팔가 해전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해상권을 장악하는 최대의 접전 지역이었다. 나폴레옹은 이 해전에서 참패를 당했고, 승리는 영국에 돌아갔다. 프랑스의 함대는 14,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모두 괴멸 당했고, 프랑스 제독은 사로 잡혔다. 겨우 스페인 함선 11척만이 가디스로 회항했다.

결국 이 해전의 참패로 나폴레옹은 영국 상륙을 단념하게 되었다. 하지만 넬슨은 "나는 20살의 약속을 지켰고, 나의 의무를 다했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라는 말을 남긴 후 그의 기함 빅토리아호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인 트라팔가 해전(Battle of Trafalgar)을 승리로 이끈 영국은 이후 150년 간 해상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눈곱만한 지브랄타가 이토록 큰 승리를 가져오게 할 줄 몰랐다. 나폴레옹조차 해전에서 참패를 당해 지브랄타를 통과하지 못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미국의 역사가 포트(Potter)는 "Sea Power, a Naval History"라는 책에서 "나폴레옹은 군사적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해군 전략가는 아니었다"고 평가한데서 지브랄타의 위력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주민들의 땅, 지브랄타

지금 지브랄타는 영국 국기와 화폐, 음식,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국식으로 도배해 놓았다. 거기다 심심하면 한번씩 영국 본토에서 군함과 잠수함까지 동원해 스페인 코앞에까지 와서 무력시위를 하고 가니 얼마나 속이 뒤틀리겠는가? 이런 꼴이 보기 싫었던지 스페인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지브랄타를 빼앗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1969년 그는 아예 국경을 봉쇄해 16년 동안 지브랄타를 독 안에 든 쥐처럼 만들기도 했다. 1975년 프랑코가 죽자 곧 닫혔던 국경이 열리긴 했지만 어떤 진전도 없었다. 근자에 와서도 스페인 정부는 지브랄타를 돈 세탁과 밀수 등의 피난처로 지목해 선박이나 항공기를 스페인으로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전화를 제한하는 등 수시로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대외적으로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영토를 식민지로 삼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심심찮게 비난을 퍼 붙기도 한다. 그러면 영국은 "주민들의 뜻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며 동문서답(東問西答)만 되풀이한다. 즉 주민들이 주권을 선택했는데 그걸 식민지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란 뜻이다. 실제, 지브랄타 주민들은 1967년 스페인 주권이양을 놓고 주민투표를 했으나 총 12,182표 중 44표만이 찬성표를 던졌고 나머지는 이양에 반대했다. 스페인 정부도 주민들이 "우리는 스페인보다 영국이 더 좋다"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운동경기는 반드시 심판이 있지만 전쟁은 심판이 없어도 가능한 것은 신판이 없어도 승패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만 영토를 빼앗은 것이 아니다.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힘이 없을 때 빼앗길 수밖에 없는 "밀림의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국주의(帝國主義)의 딜레마

주지하는 바와 같이 스페인이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주의 정책을 가장 먼저 시도했다. 16세기는 스페인의 세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통해 수많은 지역과 땅덩어리를 점령했다. 그 후 바통을 받은 나라가 영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를 꼽을 수 있다. 한때 영국은 자기 나라의 100배나 되는 식민지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영국(England)이란 명칭이 영국연합(The United Kingdom)으로 바뀐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럽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은 식민지 확보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제국주의 역사가 시작된 지 벌써 500년이 지났건만 그 열기는 아직까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스페인은 제국주의 선구자답게 과거 차지한 많은 땅 덩어리를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스페인이 달라고 하는 땅은 불과 하나, 지브랄타가 고작인데 비해 남에게 줄 수 없다고 하는 땅은 더 많다. 모로코 영토 내에 갖고 있는 "쎄우따"(Ceuta),"멜리야"(Melilla) 그리고 축구장 크기 만한 바위섬, "페레힐"(Perejil)섬이 그 대표적이다. "페레힐" 섬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말이 무인도이지 모로코 해안에서 불과 200m거리에 있다. 모로코 당국은 오래 전부터 영유권을 주장해 왔지만 몇 백년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4년 8월 무슨 의도로 그랬는지, 미친 척하여 12명의 군인들을 그 섬 안에 들여보낸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스페인은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무려 군함 4척과 숫자 미상의 잠수함까지 급파, 그 섬을 단순에 포위하였다. 12명과 싸우기 위해 잠수함을 파견하다니! 이것은 "분명 우리가 점찍어 놓은 땅을 넘보지 말라"는 시위였다. 당일, 스페인 국영 방송은 총리실을 인용, 스페인 군이 전격적인 섬 탈환작전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스페인이 이처럼 조그만 바위 덩어리 하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스페인이 모로코 영해 내에 갖고 있는 "쎄우따"와 "멜리야" 영토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베리아 반도에서 수천 km 떨어져 있는 라스팔마스를 비롯 7개 카나리아 군도 역시 모로코 연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유권분쟁은 한 때 강성했던 제국주의가 낳은 산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스페인을 비롯 유럽국가들이 갖고 있는 딜레마는 과거 제국주의의 수혜자들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점이다. 스페인이 "페레힐"섬을 모로코와 공유할 수도 있다는 보다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지브랄타 때문인 것이다. 운명은 아첨하는 자에게 잔인하다. "우리가 오르는 것은 단지 떨어지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고야의 예견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적중한 셈이다.

지브랄타, 돌이킬 수 없는 땅인가?

지브랄타는 유럽에서, 독도는 아시아에서 똑같이 영유권분쟁에 쟁점이 되고 있다. 독도가 엄연히 한국 영토지만 그래도 과거 전범(戰犯)국이었던 일본이 자꾸 시비를 걸어오니 신경이 쓰인다. 일본이 생떼를 부리는 내용을 보면 독도는 "주인 없는 땅", "무인도 섬"이었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해댄다. 사실,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국제적인 시각도 미온적일 수 있다. 일본이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지브랄타가 독도와 다른 점이라면, 지브랄타는 300년 이상 사람이 살았던 땅이라면 독도는 무인도라는 점이다. 영유권 분쟁에 있어 이보다 중대한 약점이 없다. 
그런 점에서, 독도에 대포 한 대보다 주민 한 가정이 그곳에 사는 것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스페인이 300년 이상 발버둥 쳐보아도 "주민들이 아니다라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혹시 지브랄타가 돌이킬 수 없는 땅이 되 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 스페인이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문제다. 개인은 물론, 인류역사에 명멸해 갔던 수많은 나라들 또한 땅을 쉽게 포기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땅에 대한 욕심이 가져온 분쟁과 비극의 역사는 길고도 험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인간이 땅의 소유권을 독점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불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이 땅의 소유권을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고 다만 사용권만 부여해 주셨기 때문이다.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레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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