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7일 월요일

유적지 내부가 보고는 싶은데, 돈이 없을 땐? [자전거 세계일주]






자랑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보통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잘 가지 않는다.
물론 나도 가고는 싶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수 많은 박물관이 있고,
나는 그 모든 박물관에 가 볼 수 있을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 중에 보는 자연이 곧 내 박물관이요, 미술관인데,
굳이 돈을 내면서까지 안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며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다.
사실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보고 느끼는데는 돈이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나?
사실 돈 내고 안에 들어가봐야 별 것 없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내부가 정말로 보고 싶을 때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그냥 담을 넘거나 뒷문을 찾는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돈 때문에 안에 못 들어가게 되면,
가끔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터키 가파도키아
워낙 그 지역 일대가 넓기 때문에, 다 보려면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물론 차가 있으면 이동하는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네브셰히르라는 곳에 머물면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자전거는 그곳에 두고,
데린쿠유(네브셰히르에서 30km 떨어진)라는 곳에 있는 지하도시를 
보러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꽤 오래 기다렸지만, 아무도 서지를 않았다.

터키에는 무슬림이 많은데, 
왠지 내 느낌에는 그들이 보수적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 보수적일 것 같았던 한 무슬림 가족이 차를 세워주었다.
무슬림=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내 편견이었던 것이다.
그 무슬림 가족이 데린쿠유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지만,
아쉽게도 말이 통하지 않아 긴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지하도시에 도착했을 때, 약간 실망했다.
어딘가 내부로 숨어들어갈 문이 있을까 싶었는데, 
어디에도 그런 문은 보이지 않았기에.
표를 사지 않는 이상은, 지하라 넘을 수 있는 담도 없고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땅을 파는 수밖에.
그렇다고 그냥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하도시가 유명한 관광지이다보니, 
관광객들이 무척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나를 위해 티켓을 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티켓 사달라고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터키 사람들은 아시아인들을 아주 좋아한다.
왜냐 하면 우리는 형제니까.
내가 굳이 부른 것도 아닌데,
모르는 사람들도 와서 말을 걸곤 한다.
한 친구랑 거래를 했다.
내가 한국 노래를 한 곡 불러줄 테니, 너는 티켓을 사주지 않겠느냐고.

그 친구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내가 뭐 특별히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어차피 그 친구는 한국 노래를 잘 모를 테니까.
처음으로 길에서 모르는 사람 앞에서 하는 공연(?)이었다.
나의 노래가 끝난 후, 약속대로 그 친구는 흔쾌히 티켓을 사 주었고,
나는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 옛날 크리스천들이 숨어살았다는 지하도시는 꽤나 견고했고 인상적이었다.
한참 동안 지하도시를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차 한 대가 섰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여기 올 때 태워줬던 무슬림 가족을 다시 만난 게 아닌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너무나 반가웠고, 
우리의 만남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무료로 본 지하도시와 다시 만난 무슬림 가족,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을 가파도키아에서 만들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



왼쪽 친구가 티켓을 사 주었다.




지하도시 내부




열려라 참깨?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하도시



저 벤치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이웃집 할아버지

이웃집 아주머니



지하도시로 갈 때와 올 때 우연히 태워준 무슬림 가족



차 안에서 내다 본 바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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