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3일 수요일

브라질의 고층건물과 파벨라, 그리고 룰라




위험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 브라질.
다행히 여전히 신변의 이상은 없다.
상파울루와 리우 데 자네이루 두 곳의 외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고층건물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빈민촌 파벨라.

한국에 있을 땐 덜 느꼈던 것인데, 하늘의 상당부분을 가리고 있는 고층 건물들을 보며 드는 느낌은 서울이랑 다른 게 없네?라는 생각과 멋지다라기 보다는 어떻게 하나같이 저렇게 죄다 못 생겼을 수 있을까, 그냥 쳐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그 거대하고 괴물같은 건물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이 사는데는 필수적으로 하늘과 풀이 필요할 것인데, 빛도 잘 들지 않는 빌딩 숲 사이에서 매연만 마시고 살아야 한다니. 평상시에는 지옥같은 그런 곳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 한 번씩 물 좋고 공기 좋은 자연으로 휴가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아이러니다. 도시는 모든 것이 빠를 것이라 생각되지만, 기다리는데 시간 다 보낸다. 꽉 막힌 도로에서, 층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에서.

파벨라는 영화 "시티 오브 갓", "엘리트 스쿼드" 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파벨라는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자란 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못 사는 동네 중 하나였던 봉천동. 집안에 화장실도 없이, 방 한 칸에 온 가족이 같이 살고, 연탄으로 난방을 했던. 영화에서는 파벨라가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그려지지만, 오늘 내가 잠시 스쳐간 파벨라는 어린 시절 내가 자란 그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파벨라의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데,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뒤따라오던 청년의 손에 검정색 무언가가 들려 있어 혹시 총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휴대폰이어서 같이 걷던 친구랑 한참을 웃었다.

고층빌딩과 파벨라를 통해 알 수 있듯, 브라질의 빈부격차는 언뜻 보기에도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거리에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거지들이 넘쳐난다. 브라질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는데, 브라질 온 이후로는 브라질에 관심이 조금 간다. 그러다 우연히 EBS 지식채널에서 만든 "룰라의 눈물"이라는 영상을 한편 보게 되었는데, 가난하게 자랐고, 지금도 가난한 나로서는 영상을 본 후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아마 영상을 본 한국 사람들은 아마도 왜 우리나라에는 룰라와 같은 대통령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실제로 룰라가 영상이 보여주듯 브라질 국민들로부터 그리 존경을 받는 대통령인가 싶어, 만나는 친구들에게 룰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굉장히 의외이게도 지금까지 만난 브라질인 중 누구도 룰라를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고, 존경은 커녕 사기꾼에 도둑놈으로 인식해 룰라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동영상 한 편보고 펑펑 울어버린 나로선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생각해보면 룰라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 없었으면서, 동영상 하나 보고 너무 쉽게 판단했던 건 아닌가 싶어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듣기로는 가난한 자들은 당장의 당근으로 인해 룰라를 좋아할 수도 겠지만, EBS의 동영상은 룰라가 잘한 일만 부각시켰고, 그 또는 그의 정당의 비리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EBS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정보가 없거나 부족한 상황에 동영상 하나나 기사 하나의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 브라질의 엄청난 수의 빈민을 보면서 드는 단순한 의문은, 브라질에는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빈민들이 그 기회를 잡으려 노력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기회가 없거나 너무 적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없어서, 아예 노력조차 안 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실제로는 이렇게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고,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히고 섥혀 있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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